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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필사

'엄마'는 있고 '여성'은 없다 - <민낯들 - 오찬호> 중에서

by Seuni's Book Journey 2024. 3. 19.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 가운데 고정관념을 전제한 표현이 많다. 고정관념이 강할수록 표현은 매우 즉각적이며, 때로는 공격적으로 표출된다.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소란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는 뭐 하는 거야!"라며 화를 내는 경우를 보자. 이게 가능하려면 세 가지 고정관념이 견고해야 한다.
 
우선, 아이에게 반드시 '부'나 '모'가 있을 거라는 건 모두가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형태 속에서 살고 있다고 여겨서다. 최근 '학부모'라는 표현을 '보호자'로 바꾸자고 하는 건 이런 기본값에 대한 성찰이다.
 
두 번째 고정관념은 십중팔구 '엄마부터' 떠올리는 시선이다. 육아의 일반적인 모습이 특정 성별에게 치우쳐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인식일 거다.
 
마지막은 그 엄마를 찾는 격앙됨에 있다. 정말로 엄마를 찾아 주려는 안쓰러운 마음이 아니라, '도대체 엄마란 사람이!'라는 위압스러운 태도가 드러나는 게 다반사다. 엄마가 자기 역할 못했으니 욕먹어도 싸다는 식인데, 이 편견 안에서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은 티끌만큼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정상가족 신화와 기-승-전-엄마 책임론이 팽배한 세상에서 '낙태'는 개인 신체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철학적 논의로 넘어가지 못한다. 고정관념을 도덕으로 포장하는 사회제도를 비판하는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여성을 사람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성별과 그에 어울리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출생률이 낮다는 이야기가 거듭되다 보면 항상 "요즘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서 출산을 피한다"는 식의 망언이 등장하는 것을 보라.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 그리고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는 "출산 경험도 없는데" 하는 식의 말을 들어야 했다. 원시적인 상상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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