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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너무 답답하다.
다음 장에는 어떤 속상한 일이 있을까 싶어 가슴 졸이면서 책을 읽었다.
다들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이 아픈데 정말 해결 방법이 없어서 너무 속상하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알기에 더 화가 난다.
묵묵히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밝은 미래가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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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 이혼 후 이런 저런 일을 했지만, 급식 조리원에서 일하다가 발을 다친 이후로 서있는 일을 못한다.
병원비로 벌어놓은 돈을 다 쓰고 엄마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산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치매를 앓게 되어 간병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셨고, 엄마의 연금이 받아야 하기에 작은 방에 엄마의 시신을 모셔두었다.
연금이 생기니 곧 대학교 졸업을 앞둔 딸이 생각나서 옷 한 벌 사주려고 연락을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딸 은진은 엄마가 물주인 양 연락해서 돈을 쓰게 만든다. 은진이 어느 날 갑자기 명주의 집에 찾아왔고 우연하게 방바닥에서 돈뭉치와 땅문서를 발견한다. 명주는 그 집이 엄마의 시골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준성.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그때부터 간병을 하고 있다.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지만 자격증도 못 따고 스펙도 없어서 현재는 대리운전과 간병을 병행하고 있다. 준성은 대리기사 일로 운이 좋던 어느 날, 외제차를 주차하다 실수로 사고를 내서 2000만원의 수리비를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가스 불을 사용하다가 불이 나서 화상을 입으셨다. 아버지 간병으로 모든 시간을 쏟아야 하고 수리비며 생활비며 막막하던 때에 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명주는 준성에게 자신의 일을 얘기하고 함께 하기를 권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준성은 그러기로 마음을 먹고 명주와 준성은 두 부모의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명주는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을 떠나 엄마의 시골집에 두 노인들을 묻고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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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 막막한 삶에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는 명주와 준성, 서로가 있어서 덜 외롭고 덜 무섭지는 않을까.
연금 때문에 부모의 죽음을 은폐한다는 글로만은 파렴치한으로 읽히겠지만,
각자의 사정을 알고 나면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럴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뉴스를 보더라도 이제는 그들의 사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이 조금은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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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겨울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춥고 어렵지만 언 땅에서 새싹이 움트고 있는 것이, 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명주와 준성도 그 봄의 기운을 느끼고 있을까.
17P. 한 여자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다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사회현상이라고 부른다 했던가.
91P.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따뜻했던, 자신들의 생활비를 덜어 명주의 병원비를 보태주었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지금쯤은 조금이라도 나아졌길 바랐는데 모두가 명주가 지나온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직도 이 지겹고 지겨운 가난 스토리를 반복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총총히 돌아가는 그들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생각했는데 불쑥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토록 지긋지긋해 마지않던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170P.
- 아버님이 많이 원망스럽지?
명주는 702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 나 같아도 그럴 거 같아. 미워하고 원망하다 나 자신까지도 미워하게 될 거 같아. 그래도 아버지 너무 원망하지 마. 아버지도 이런 상황이 되리란 건 몰랐을 거야. 마음속으론 많이 미안해하고 계실 거야.
224P.
-가난도 싫고 이 집만 아니면 좋을 거 같아서 결혼해 나갔는데, 돌고 돌아서 온 게 결국 집이었네.
-응?
엄마가 요구르트를 빨며 해맑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왜 말해주지 않았어? 사는 게 원래 이렇게 지긋지긋하고 지옥 같다는 거. 엄만 알았어? 엄마는 알았냐고. 응?
엄마는 여전히 아기 같은 표정으로 요구르트만 빨고 있었다.
-몰랐겠지. 몰랐으니까 버티고 버티다 이렇게 정신줄을 놓아버렸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돼버렸겠지.
명주는 측은한 눈길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살아서, 살아 있어서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려니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뽀얀 얼굴의 엄마는 명주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미안해 엄마. 이렇게밖에 못 해줘서······ 정말 미안해요.
명주는 눈앞의 엄마를 향해 말하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233P.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이것도 한 인생인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면 준성은 아버지가 세상에 태어나 눈에 띄게 이룬 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어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 보잘것없는 인생에 대한 변명이라고만 생각했다. (…) 이제 준성은 아버지의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살아낸 인생은 그것대로 하나의 인생이니, 너도 네 삶을 네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낼 만한 인생이 아니어도 모든 삶은 그대로 하나의 인생이니까.
254P. 각자도생, 각자도사. 각자 열심히 산 대가가 불행의 거미줄에 포박당한 채 범법자가 되거나 패륜아가 되는 일뿐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까 공동체의 실패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진창과 폐허에서도 설득력 있는 희망을 만들어낸 이 소설이 인간 존엄과 사회 제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박혜진(문학평론가)
255P. "너무 젊어서부터 소설에 모든 걸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 일에 전문가가 되고 그것에 관해 쓰면 그게 소설이 되는 거지, 소설이 뭐 별건가요? 좋은사람이 되는 게 어렵지. “
(…)
누구나의 삶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긴다. 이 소설이 돌봄에 지친 누군가에게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다행이겠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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