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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시, 에세이

[책리뷰] 평일도 인생이니까 - 김신지

by Seuni's Book Journey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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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이후 나는 속으로 자주 중얼거려 왔다.
그래, 그렇게 되면 참 좋겠지.
하지만 너무 애쓰지는 말자.
이 모든 건 결국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일들이야.
애먼 데 애쓰다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주 그렇게 되뇌어야 했다.
열심을 덜어 낸 자리에서 자주 물었다. 애매한 재능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무난하고 야망 없는 사람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괴로운 건 왜일까?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는데도 왜 자꾸 남의 삶이 부러워질까? 내가 나여도, 정말 괜찮은 걸까?

 

 

"제주도처럼 공기 좋은 데서 사나 서울에서 사나······. 제주도에서도 마음이 지옥 같은 사람 많아. 서울에서도 얼마나 즐기며 사는 사람이 많니. 어디에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자리 그대로 그냥 너무 좋다, 만족하면 되는 거야."

 

 

"어마야, 니 스트레스를 왜 받나. 그거 안 받을라 하믄 안 받제."

 

 

야망이라곤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나는 끊임없이 더 나은 무언가를 찾아 노력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느라 현재를 희생하고 싶지도 않다. 삶의 거창한 목표 같은 걸 세워 버리면, 목표는 과대평가하고 매일의 일상은 과소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있고, 지금 내 삶이 미진한 거라고 여기고 싶지 않다.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그게 진정한 나라고 여기고 싶지도 않다. 보이지도 않는 하나의 빅 픽처보다 매일 눈앞에 보이는 스몰 픽처를 100개, 1,000개 그리며 살고 싶다. 오늘은 큰 그림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오늘이니까.

 

 

재능 있는 친구 뒤에서 박수를 치는 게 보통인.

 

 

"작가란 오늘 아침 글을 쓴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세계였다. 단지 오늘 아침 일어나 글을 쓰면 되므로.
(…)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일을 마치고 만족감 속에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대단한 성취를 좇거나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나와 약속을 하고 조용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성공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하고 싶어서인가 하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른이 되어서, 마흔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고. 그럴 때 나이는 기꺼운 변화가 된다. 어린 우리가 몇 밤이나 자면 어른이 될지 그토록 미래를 기다린 것처럼,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때엔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로 미래의 나를 기다려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제가 젊었을 때의 제 젊음을 생각해 보면, 좋은 건 알겠는데 늘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뭔가 늘 달떠 있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제게 젊음은 그런 편이었어요. 지금은 그 젊음을 겪어 낸 후의 또 다른 평온함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아마, 앞으로도 내가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또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걸 기대할 수 있고요. 그것을 기다리는 일이 참 좋습니다."

 

 

잘 산다는 게 대체 뭘까? 그건 그냥 내가 오늘 하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그런 일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즐거움을 찾아다녀야 할까? 크든 작든 내가 느낀 즐거움들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는 게 아닐까? 언제 즐거운지, 언제 웃었는지 기억하고 산다면 그걸로 충분한 인생일지 모른다.

 

 

과거의 서러움은 그렇게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결핍이,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려 애쓰는 사이,
그런 것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 되는지도.
(…)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을 채워 주는 사람으로 자라,
내 행복은 내가 책임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어른으로 사는 기쁨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곳의 풍경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그래서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을 만나면, 더 자주 보려 하고, 사진을 찍어 두고, 그럴 수 없는 곳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그림을 그리듯 일기를 써 둔다. 언젠가 사라질 세계를 미리 기억해 두려고.

 

 

이 세 시간을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지금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의 주말, 나의 토요일이었다. 엄연히 내 인생의 세 시간이고.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이런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
행복한 순간 앞에서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까워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게 아닐까? 그 외의 시간들을 하찮게 대할 때, 우리가 버리고 있는 건 시간이 아니라 인생인데도. 그동안 숱한 평일을 인생에서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던 나처럼.

 

 

"술 마실 땐 왜 저렇게 즐겁나 몰라. 다음 날 즐거움까지 미리 당겨써서인가."

 

 

지금까지의 내게 지나 버린 1년이란, 그저 '작년'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한 덩어리의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록해 둔 1년 속에서는 하루하루의 날들이 낱알처럼 살아 있었다. 일기를 쓰기 전의 내가 그걸 몰랐던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은 일기장 속의 매일은 밤마다 내게 그것을 증명하듯 보여 주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는 걸. 같은 계절, 같은 날짜이지만 오늘은 분명 작년 오늘과도 다르다는 걸.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적어 두면 내가 보낸 하루의 인상이 된다. 아마 우리의 하루에도 기억할 만한 순간은 늘 있었을 것이다. 바쁜 우리가 그것을 만나고도 스쳐 지났을 뿐.

 

 

 

 

 

 

 

 

 

 

 

 

 

 

무언가를 계속 좋아한다고 말하면, 삶이 점점 그리로 가까워진다는 것.

 

 

살다 보면 어째서 당연해지는 것들이 이토록 많은 걸까. 당연한 건 없는데도.
(…)
언제 어디서든 이 시간에도 '끝이 있다 생각하면, 사람은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인 걸까?

 

 

나도 나를 겪어 봐야 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용기는 높이 사고, 그 일을 그만 두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단 사실은 쉽게 잊어버린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포기라 말한다. 때문에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탓하게 된다. 남들은 잘만 다니는데 내가 나약해 빠진 거 같고, 상황이나 시스템 자체의 문제보다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닌가를 먼저 검열하게 되고······.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때뿐, 나에겐 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짜 어른은 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내 이야기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나는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데 마치 전부인 것처럼 오해받고 있다고 속상해하면서, 상대에 대해서는 같은 오해를 반복하니. 나를 규정하듯 하는 말에는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불쾌해하면서 다른 이에게는 그런 말을 서슴지 않으니.

 

 

아끼는 마음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사실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게다가 그 마음이란 건 궁색한 변명과 자기합리화가 필요할 때 꺼내 드는, '나만 알고 있던' 마음에 그칠 때가 더 많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 그랬다.
(…)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그리고 나도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해야 한다. 나에 대한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 말고 그냥 상대의 마음이 궁금해야 한다. 우리는 궁금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우리는 언제부터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을까? 관계란 것을 반가워하기 전에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요즘은 어쩌면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아서 친해질 기회를 놓치며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해서, 대화를 더 나누고 싶다고,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함께 가면 좋을 만한 곳을 찾아냈다고 말하지 못해서.
(…)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내도 되고, 노력해도 된다. 마음을 주는 건 결코 후회할 일이 아니니까.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이제야 알아간다.

 

 

나하고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혼자 있을 때 깃드는 고요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너무 많이 만나지 않고, 너무 많이 말하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해야 할 말들만 한 뒤 다시 혼자로 잘 돌아오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혼자 있는 법 역시, 평생을 살아가며 배워야 하는 존재들이니까.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어서라고 본인은 한탄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화면 속의 슬픔이 무슨 슬픔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떤 슬픔은 어떤 건지 알겠어서 슬프고, 어떤 슬픔엔 내 부모가 겹쳐서 슬프고, 어떤 슬픔은 겪어보지 않은 내가 그 마음 안다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어 슬프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 슬픔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슬픔을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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