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내내 힐링이었다.
단독주택의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단독주택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옛날 사연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나도 옛날 사람인가 보다.
옛 이야기가 아는 이야기라 정겨워서 나도 그만 그 시절 생각에 푹 빠졌다.
비 오는 날 부추전에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막걸리를 곁들일 수 있는 행복.
날씨 좋은 날에 밖에서 구워 먹는 고기는 또 어떠한가.
아파트에 살면서 해볼 수 없는 자연과 공감하는 소소한 일상이 (비록 소소함을 위한 대가는 치열하지만... 잡초, 추위, 목욕...) 어린 시절 주택에서 살던 나에게도 너무 그리워서 한껏 부러웠다.
옛 생각이 절로 나서 푸근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P27.강북 단독에 살면서 새로 생긴 취미는 한밤중 구도심 구석구석 걷기다. 자정 넘어 두세 시간 도심을 걷는다. 한밤에 나서는 나를 아내와 아이들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린다. 그러나 세계에서 몇 안되는, 밤길이 안전한 도시가 서울이다. 나는 안다. 깊은 밤 산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자정을 넘긴 야심한 시간, 취객들의 푸념조차도 연민을 느끼게 한다. 버스 전광판에는 '운행 종료' 빨간 글자가 반짝인다. 운행 종료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P34. 하지만 사색, 명상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인 파산 선고와 같다. 슈바이처의 말씀이다.
P35. 단독에 살면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단풍나무 밑도 좋고 덩굴장미 넝쿨 아래도 좋다. 손바닥만한 정원에도 정이 가는 구석이 있다. 전나무 그루터기 밑 빨간 벤치는 나만의 공간이다. 갓 내린 에스프레소를 들고 나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P48.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이야기, 부르던 노랫소리, 우리 형제들이 다투던 울음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 가족이 웃고 고함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옛집에는 인적도 없이 정적만 가득하다. 한참을 혼자서 컴컴한 방 안에 앉아 있다가, 이윽고 집을 나섰다. 문을 닫고 이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옛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잘 있거라 정든 옛집, 나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시울이 젖어 온다.
P100. 비록 혼자 설 수 없는 긴 장대일 뿐이지만 빨랫줄 사이에 세워 두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흔들 균형을 잘 잡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바지랑대 역할을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상황이 필요할 때가 있다. 끝과 끝에 서서 힘있게 잡아 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중간 어디쯤에서 받쳐 주는 바지랑대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P159.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세월을 실감하게 된다.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이 피고 시들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풍경을 통해 생의 덧없음을 깨닫게 된 다. 세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코르니유 영감처럼 시대에 뒤떨어지고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P191.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한국의 중년들은 불안하다. 그럴 땐 강남 아파트를 처분해 강북 주택가 단독에 살면 된다. 지극 히 분명한 진리이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장년 세대들의 비극이다.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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