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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시, 에세이

[책리뷰]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 정세랑

by Seuni's Book Journey 2024. 9. 12.

 

 



- SF 소설가가 쓴 여행에세이. 궁금했다. 감성적이어서 의외? 이성적을 기대했나?

- 혼자 또는 여행 메이트와 여행을 가서 서로 구속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하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여행은 함께도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 지인이 있는 여행지에 가서 지인의 일상에 스며들듯, 방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여행 왔다고 가이드를 자처해서 긴 시간을 하나라도 더 보게 해주겠다고 함께 하여 서로 부담을 주고 받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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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적으로 출발한 박물관들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구성부터가 역사와 문명의 일그러진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아시아의 박물관에 서양 유물이 풍부한 경우는 잘 없다. 반면 서구에선 어딜 가나 아시아 유물이 풍부하다. 이런 포함과 불포함의 관계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동양이 근대화의 정신없는 급물살에 휩쓸려 있던 시기에 서양은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했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만난 것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포함당하며······. 이 마음속의 요철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쓸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렇게 2012년부터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찍게 되었다.

 

 

이 리스트는 무한히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소소한 것, 언뜻 무용해 보이는 것, 스스로에게만 흥미로운 것을 모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삶을 훨씬 풍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집가만큼 즐거운 생물이 또 없고 수집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는 곳을 매일 여행지처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가가 되니까.

 

 

한국 어딘가의 길거리에서, 조금 정신없어 보이는 여자가 주저앉아 휴대폰으로 바닥을 찍고 있는 걸 발견하신다면 저일 수도 있겠습니다······. 길에 갑자기 주저앉아 사진을 찍는 게 처음만큼 쑥스럽지 않다. 언제나 바쁘고 쫓겼던 마음이 그 순간 새로운 리듬으로 전환되니 말이다. 비용도 들지 않고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근사한 수집 취미를 센트럴파크에서 얻었다고 기록해두고 싶었다.

 

 

벼룩시장은 물건의 수명을 늘인다는 점에서 가장 근사한 친환경 실천 중 하나 같다. 넓게 트인 공간에서 햇볕을 쬐며 열리든, 휴대폰 속 앱의 형태로 보글보글하든 간에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 사실 누군가 선택했던 물건이 다시 선택되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겪어본바, 대부분의 서브컬처 향유자들은 다정하고 기발한데, 가끔 몇 년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집요할 정도로 따라붙으며 잔인한 말들을 하는 이를 맞닥뜨리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어렵다. 마음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밖에.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 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굳히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며 공부한 자세한 내용들은 많이 잊었지만 그것 하나는 배운 것 같다.

 

 

어느 정도까지 공격적으로 말해도 될 것인가가 오래 하고 있는 고민이다. '조신하게, 예쁘게 말해' 하는 식의 강요는 지긋지긋해서 굴절 없이 똑바로 말하고 싶은데 또 어느 선을 지나치면 따가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 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

 

 

세계화란 친구를 지구 저편에 데려가버리는 현상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L이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을 '친구네'라고 여기는 것이 싫지 않다.

 

 

필수적인 휴식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고 일부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당연히 인간적인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해 보이고, 혹사와 착취는 종종 근면과 편의의 표면을 하고 있어 구분을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듯하다. 모두가 쉴 때 쉴 수 있게, 일하다 병들거나 죽지 않게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도 감수하고 싶은데 변화는 편리 쪽으로만 빠르고 정의 쪽으로는 더뎌서 슬프다.

 

 

 

 

 

 

 

 

 

 

 

 

 

 

세상은 망가져 있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그것을 알면서 여행하는 것은 묘한 일이다. 여행지에 이르러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실은 아름답지 않다니' 중얼거릴 때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마음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만다.

 

 

여행한 공간이 늘어나고 또 늘어나면 정보를 건질 그물망이 촘촘해져서 책이 훨씬 재밌어지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지금껏 놓친 정보는 또 얼마나 많을지, 종종 허술하게 흘려보냈을 반짝임들을 안타까워한다.

 

 

누군가를 동등하게 대해주는 것, 북돋아주는 것, 가능성을 알아봐주는 것은 교육자의 자질이기도 하고 어른의 자질이기도 한 것 같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하지 않을까?

 

 

"친절함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한다. 용기나 대담함이나 너그러움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친절함이 말이다. 당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의 말을 어설프게 번역해보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세상의 보고 싶지 않았던 면들을 보고 나서야 이 말이 의미 있게 와닿았다. 아동문학을 쓰고 싶었는데 다른 방향으로 와버렸지만, 세계에 대한 태도를 다시 다잡고 싶을 때는 역시 아동문학을 찾게 된다.

 

 

일상은 상실감을 주지 않는데 여행은 상실감을 주기 때문에 마음이 그리는 곡선이 부담스러워서 여행을 저어했는지도 모르겠다. 떠나면 분명 희열에 찰 테지만 그 희열이 보존되지 못하고 제어할 수 없는 틈으로 가루처럼 흐를 것이라는 점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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