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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시, 에세이

겨울의 언어 - 김겨울 산문집

by Seuni's Book Journey 2023. 12. 18.

 

 

 

🔖

“내가 오로지 김겨울로 쓰는 첫 책이 될 것이다.”
안쪽 깊은 마음을 꺼내어놓는 본격적인 첫 산문집『겨울의 언어』

 

 

💬

유튜브에서 처음 알게 된 김겨울작가님.

책 소개하는 콘텐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다양한 책을 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철학책을 많이 어려워한다는 사실도 알아버린..

다른 책소개를 하는 유튜버들이 많지만 이상하게 김겨울작가에게 꽂혀버린 나.

그런 그녀의 신간. 안 읽을 수 없다.

 

 

💬

역시. 초반에는 어려웠다.

심오한 주제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작가님도 초반에는 모호하지만 뒤로 갈수록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

읽기 쉬울거라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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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이전 책인 [책의 말들] 책을 읽어봐야겠다!!

 

 

 

 

 

 

 

 

 


 

 

 

준비가 무의미해졌을 때,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보상도 못하게 되었을 때,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 갑자기 의미를 잃고 공허한 구멍으로만 남게 되었을 때, 우리는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뭐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아쉬워하고, 어떤 부모들은 자식의 등짝을 때리면서 그 시간을 타박할 것이다. 내가 콩쿨을 준비한 시간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그래서 콩쿨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상을 받긴 받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곧 피아노와는 작별을 고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 준비가 무의미해질 때

 

 




시간을 견디는 경험이란 삶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노력이며, 흘러가는 감정에 집중하고 타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다. 그 모든 시도와 노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속에서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 누구든지 태어나서 해볼 수 있는 경험보다 해보지 못하는 경험이 까마득하게 많기에 우리는 함께 있을 때만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그래서 함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혹은 예술만이 서로의 연장이 된다.
- 이상적인 경청의 세계

 

 




“여러분은, 한 사람의 일관되고 내밀한 이야기를, 적어도 수 시간에서 수 주에 이르기까지, 흐름과 논리를 따라가며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 어느 강연을 가도 여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없다. 수 시간은 커녕 수십 분을 하기도 쉽지 않은 경험이니까. 하지만 책은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아니, 책만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나는 그걸 안다.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유투브에서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유튜브 역시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과 나는 그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듣는 사람들이, 그곳에도 있기 때문이다.
- 성큼성큼 책 권하는 일

 

 

 

 

 

 

 

 

 


 

 

나는 새삼스럽게 - 혹은 비로소 - 책의 수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건 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얼마나 날카로운 흔적을 남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고 해서 수명이 연장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 각각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 그러니까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만의 회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 그 회로는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남들이 도달하지 못한 곳을 먼저 도달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이야기,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 쓰인 적 없는 유머, 고려된 적 없는 표현, 구성된 적 없는 플롯을 쓰면, 그 책은 뇌에 선명한 자신의 길을 남기게 되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사람이 곧바로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라건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 동안 선명하게 노력한 책들이 사랑받기를. 오래오래, 책에 내려진 쇠락의 선고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기를.
- 책의 수명

 

 


 

 

몇 달 전에는 나를 포함해 P인간 넷이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2박 3일 기간 중 계획이라고는 “둘째 날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자”뿐 이었던 허술한 여행은 모두의 대만족으로 끝났다. 아무도 계획에 관심이 없고 그래서 뭘 해도 즐거운 여행. 기회배용도 생각하지 않고(안 찾아보니까) 더 좋았을 경험에 아쉬움도 두지 않는(모르니까) 여행.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 여행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J와 떠나는 여행에도 나는 입 닥치고 행복하게 따라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계획을 세워주신다굽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준비된 여행을 한껏 즐기고 돌아와서는 J와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알찬지 침 튀기게 자랑할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서로의 MBTI를 알았다면 이제 그걸 가지고 서로를 이해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해와 판단은 한 끗 차이. 판단보다는 이해의 도구로 MBTI가 쓰였으면 한다. 아니, 그러고 보니 판단형J은 이런 말조차 P스럽다고 판단하는 건 아니겠지?
- P의 오해

 

 


 

 

그러므로 내가 들춰내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사회 그 자체다.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자연은 언제부터 인간의 것이 되었나요? 육지에 사는 포유류의 90% 이상이 인간과 가축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구에 사는 조류의 70%가 가축이 된 이유는요? 우리는 어쩌다 그렇게 많은 소비를 하게 되었나요?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나요? 이런 질문은 각각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우리의 삶 전반을 돌아보게 만든다.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는 통장 안의 숫자부터 집에서 보이는 먼 산의 작은 씨앗까지 의문의 대상이 된다.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 질문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주문이다.

정말로 나도, 기적처럼 이 모든 것을 바꿔줄 기술이 마법처럼 나타났으면 좋겠다. 나도 스마트폰을, 커피를, 딸기를, 사람들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저녁 식사를, 국가 간의 안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마음껏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고 싶고(밝히건대 나는 자연파와 도시파 중 철저한 도시파 여행자다), 이런 험악한 글 대신 우아한 글을 쓰고 싶다. 소비로 인한 자기비난도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 늘 기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오늘 쓴 텀블러를 세척하고 재활용품을 분류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한숨을 쉴지언정 그런 의식이 큰 문제에 있어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도와주는 작은 계기임을 상기한다.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질문이 자라나는 곳에서 시간이 멈추듯, 질문이 멈춘 곳에서 관성이 자라난다.
- 시간을 정지시키는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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