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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시, 에세이

우리만의 리듬으로 삽니다 - 신연재

by Seuni's Book Journey 2023. 12. 18.

 

 

 

 

💬
'올바른' 가족관이란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 이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비혼이 늘어나는 시대. '다름'의 눈빛으로 바라봐 줘야 하지 않을까?
'70년대에는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
지금은 저출산시대.
무엇이 달라졌기에 개인의 의지가 아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건가.
이것이 올바름일까?


💬
어릴 적 엄마와 보낸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 시기를 생각하면 힘들었지만 웃음나던 시절이었다.
또다시 그런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마음을 대신 채워주는 듯하다.
어릴 적에는 보호자가 엄마였다면,
지금은 내가 보호자인 것이 달라진 점이지만.
나도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
사람은 언젠가는 늙는다.
그 점은 머리로는 알지만 완벽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나에게도 닥칠 '봉양'에 대해서 (부모님이든, 나와 남편이든)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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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개밥에 도토리가 되지 않으려면 아이를 낳아야 하나?

📕
"그 사람들 생각에 맞춰서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

📕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마 그 말은 부모 된 입장에 선 사람이 한 말일 거다. 우리 자식들의 잘못은 단 하나. 당신들을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영원히, 아니, 아주 오래 우리 곁에 있어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

📕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난 내리사랑을 할 자식이 없으니, 받은 사랑을 다시 엄마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중요해진다.

📕
잘 나이든다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계속 도전하며 잘 버티는 것.

📕
'내가 이 나이에?'라는 나이의 선에 지지 않고 모든 이르이 시작과 끝을 나이에 두지 않기.

📕
우리는 누구나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때를 맞이한다.

📕
시간의 흐름은 늙어가는 사람에게 불친절해진다.

📕
내가 겪어봐야 알게 되는 세상이 있다.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늙음이란 더더욱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걸 오십을 넘기며 깨달았다.

📕
엄마와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건 어떤 걸까.

📕
노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 내가 없을 때 엄마가 엄마를 도와줄 천사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괜찮지 않은 사람, 멀쩡하지 않은 사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약점이 있는 사람, 눈이 높은 사람 등등으로 평가되곤 했다. 그들은 내가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를 찾고 싶어 했고, 걱정을 빙자한 무심한 말들 속에는 내가 불행하고 결핍이 있는, 불완전한 상태라는 낙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도 아니고, 결혼한다고 해서 있던 결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건 어쩌면 결혼한 사람들이 더 잘 알 텐데 말이다.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인지시켜서 비혼이 많아진 게 아니고, 이미 사회 환경상 비혼이 늘고 있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도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뿐이다.

출산을 장려하는 사람들도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죄책감을 주려 하는 한, 우리는 미래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 비혼은 행복하면 안 되나요?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결이 있고, 사람마다, 가정마다 각자의 사정과 서사가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사람들은 결혼을 선택하거나 비혼을 선택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하면서 타인을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과 '다른' 삶을 존중 없이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으로 가르고, 자신만의 잣대로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엄연한 편견과 혐오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전파될까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런 혐오와 편견 아닐까.
- 사유리 모자의 유쾌하고 당당한 삶을 응원하며

 

 


 

 

이제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다. 결국 겪을 일은 다 겪게 되어 있고, 누구도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다 피해갈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 견디고 감당하며 살아온 끝에 늦복이 왔다고 본인의 삶을 해석하고 그것에 만족한다. 그런 엄마처럼 이만하면 괜찮다고 여기는 쪽을 고르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까. 속으로 삼키는 말도 많아지고, 그만큼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도 늘어나고, 젊어져야 하는 책임도 무거워진다. 그래서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와, 어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산 거야? 우리 엄마는 이런 삶을 어떻게 살아왔대?'

부러지고 휘어지는 날의 연속이어도, 어떻게 좋은 일만 일어나겠나. 어떻게 좋은 시절만 살 만하다 할 수 있겠나. 그냥 사는 거지.
- 삶이 종종 우리를 배신해도

 

 


 

 

지금을 '임시'라고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것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사 그게 경제성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세상에는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으니까
- 내가 비혼으로 살 줄 몰랐다

 

 


 

 

최현숙 작가가 "나이가 든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차근차근 늙어가는 거고 젊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끊임없이 자기 일상 속에서 차례차례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차근차근 늙어가고 있지만 당신의 마음은 아직 나이만큼 이르지 못해서 육체와 마음이 어긋나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 나만의 리듬으로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이렇게 '나이'를 핑계로 그어놓은 선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선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행가고 싶고, 춤을 추고 싶을 수 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 집이나 지키고 싶은 노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른 가족들이 수고를 해야 할지언정 다니고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 욕망해도 괜찮아

 

 


 

 

돌이켜보면 내가 바란 좋은 날이란, 보란 듯이 잘 사는 삶이었던 것 같다. 잘 안 풀리고 시들거리는 내 자존심을 세워서 번듯한 자리로 인도해주는, 역전승 같은 삶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날을 바랄 때는 내 삶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내 마음속에 일던 폭풍이 잠잠해지고,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만족스러웠다. 바로 그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좋은 날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때도 살 만했고, 지금도 살 만하다. 그렇게 버티다보니 좋은 날에 이르렀고, 돌이켜보면 그때도, 지금도 좋은 날이다.
-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

 

 

 

 

 

 

 

 

 


 

 

엄마의 노화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늙어가고 있음을 날마다 일깨워주는 몸과 기억력의 삐걱거림이 '너도 멀지 않았다'라는 경고음을 시시때때로 보내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좀 더 젊을 때 이런 미래를 미리 생각하지 못한 점, 나의 젊음이 계속될 것이라 오만했던 점, 엄마도 늙고 나도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이제야 마주하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러면서 간게 된 생각 하나. 늙는 것이 죄가 되고 짐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급한 마음에 내가 해치워버리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언젠가 다 늙을 우리가 우리의 미래인 노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 아닐까.

조금 느려도 눈치 보지 않도록 뒤에 서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극단적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용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언젠가 우리는 모두, 느려진 노인이 된다.
- 느리게 걸어도 괜찮은 세상

 

 


 

 

힘에 부치는데도 그 일을 하는 이유는 그게 엄마에게 사는 재미이자 당신이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받는 기쁨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더 강력하게 그만하시라고 말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누군가에게 한 끼를 대접하는 데서 느끼는 엄마의 뿌듯함을 내가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 아직 남은 '엄마의 땅'이 있어 감사하다

 

 


 

 

우리는 왜 사회적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할까. 그 쓸모를 입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정애인들, 노인들, 어린이들......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 누군가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들은 나다니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어지럽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때를 맞이한다.
- 81세면 돌아가실 나이라고요?

 

 


 

 

엄마가 떠난 뒤, 남은 우리의 삶이 어떨지는 겪지 않은 미래의 일이니 알 수 없다. 엄마는 당신이 떠난 뒤의 삶을 준비하시고 있지만,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직은 엄마가 계시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지금을 잘 보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 어쩌면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도 후회가 남겠지만, 덜 후회할 수 있는 최선임에는 틀림없다.
올 겨울에는 엄마와 함께 온천을 여러 군데 다녀오려 한다. 지금까지 겨울은 늘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영원히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으니까.
엄마가 계시는 이 계절도, 영원하지 않다.
-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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