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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소설

밝은 밤 - 최은영

by Seuni's Book Journey 2024. 1. 16.

 

 

 

 

 


📝
서른 두 살의 나(지연)는 이혼을 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회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으로 희령으로 내려갔다.
희령은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 댁에 놀러갔던 적이 있는 동네다. 나는 이곳에 내려와서 외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안보고 산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외할머니와 만나면서 듣는 증조모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나의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일제시절, 백정의 딸로 태어난, 나와 제일 많이 닳은 증조모, 삼천.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고, 엄마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살아온 얘기를 들으면서,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어느 정도는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
각자의 삶에는 다 어려움이 있고,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삶을 알 수가 없다 싶다.
내가 그 사람을 다 이해할 수는 없기에, 이해하기를 이해받기를 바라기 보다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줘야 하지 않을까.

💬
나의 일상 중간중간에 할머니를 만나면서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듣는 옛날 시절의 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하고 얘기를 내가 진짜로 듣고 있는 기분.
내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고, 우리 할머니의 삶이 그랬겠지, 우리 엄마가 그랬겠지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13p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아무도 겨울 밭을 억지로 갈진 않잖아.
- 16p

 

 


 

 

 

어떤말을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한다. 내게는 엄마의 그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 18p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 82p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 86p

 

 

 

 

 

 


 

 

나는 바깥에서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집에 와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곤 하던 내 존재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던 것 같다.
- 95p

 

 


 

 

 

“앞으로 남은 인생이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벅차.”
- 105p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 130p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 134p

 

 


 

 

 

두려움이란 신기한 감정이었다. 사라지는 순간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니까.
- 179p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 252p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 278 ~ 279p

 

 


 

 

 

어떤교사들은 부모가 제대로 보호해줄 수 없는 집의 아이들을 골라 괴롭히곤 했다. 책잡히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것, 그게 표적이 되는 아이의 생존 방법이라는 것을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괴롭힘당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면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해변에 가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증조모는 엄마를 찾아냈다. 어두워지는 해변에서 미선아, 미선아, 부르며 걸어오던 증조모의 모습을 엄마는 기억했다. 그때 자신이 느꼈던 반가움을, 자신을 짓누르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무엇보다도 ‘내게 누군가가 있다’라는 마음의 속삭임을 엄마는 기억했다.
- 329p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 336 ~ 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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