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가영의 드라마 작품을 봤어서 그런지 문가영작가의 말투가 들리는 듯 하다.
소신있는 자신의 생각.
그 생각을 지지해 주는 주변인들.
아빠의 육아일기는 읽어보기만 해도 아빠의 애정이 느껴져서 눈물이 난다.
가족 비밀투표. 각각의 색펜으로 쓴 투표용지에,
곰돌이 인형이 발바닥으로 쓴 것이 확실한 곰돌이 투표용지까지.
이야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매년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높이도 다르고 깊이도 달라요. 작년보다 이번 계단이 유독 높았나 보네요. 그래서 적응하는 중인가 보다. 그건 혼돈의 시기가 아니라 빨리 온 축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체성을 찾아야 해. 그게 앞으로의 몇 년을 책임질 거야.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비빔밥을 만들어버려요. 아주 좋은 축복이니 자꾸 연구하지 말고, 그냥 관찰해."
"아참, 그리고 경계인들은 무리 속에 있지 않아요. 우린 경계에만 있을 뿐 그들이 놀러 오는 거야 우리한테. 한마디로 우리가 놀아주는 거지."
"우리? 제가 경계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경계인은 경계인을 알아보는 법. 정체성을 꼭 찾길 빌어요."
- 32~33p
"자꾸만 내 행복을 빌어줘서..."
"사람들이 자꾸만 내가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거야. 그들의 소망이 덕지덕지 내 몸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널 사랑하기 때문인 걸 잘 알지 않냐는 말에 "알아, 내가 나쁜 거 알아. 아니, 이게 싫은 거야. 자꾸만 내가 나쁜 사람이 되게끔 만들어. 그저 사는 나에게 자꾸만 행복하라고 하잖아! 그게 잘못된 건지 사람들은 모르나 봐. 그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인 건지."
"난 그 무거운 임무에서 도망친 건데, 떠난 나에게 또 물어보더라. 여행은 행복하냐고, 돌아온 나에게 또 물어보더라. 어땠냐고. 다녀오니 행복하지 않으냐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게."
"행복하다고, 홀가분하다고 이야기했어. 원하는 답을 해주고 말았어."
파타의 인정에 그들의 표정은 그제야 흡족해졌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그녀는 입을 다물다 들릴 듯 말듯 읊조렸다.
"내가 진 거야."
- 39~40p
역시 실수는 늘 지혜를 늘려준다.
- 51p
"잘해준다는 건"
.
.
.
"엿 먹이는 거야. 쟤는 죽을 때까지 나처럼 잘해주는 사람을 또 어떻게 만나겠어. 내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불편하겠냐고." 친구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번에는 파타가 이어 말했다.
"잘해준다는 건 선의의 일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또 하나의 의미가 있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더라도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야. 내 진심을 의심하지는 마. 그냥 엿이 따라올 뿐이야."
- 53~54p
'그냥 하면 되잖아. 그냥. 12시. 내일. 다음 주 월요일. 1월 1일. 이게 다 무슨 기준이고 무슨 소용이야. 다짐을 할 시간에 이미 뭐라도 했겠다.'
- 56p
언니는 파타에게 말했다.
파타 네가 6살 때 유치원 등교를 처음 하던 날 엄마가 해준 말이 있다고. 엄마, 아빠가 없을 때 파타의 보호자는 너이기에 파타를 잘 보살피라고. 파타 네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에도 같은 말을 들었단다. 또 한국에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도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네가 파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고 말이다. 이제 각자 성인이 되고서는 함께 있어주지 못하지만, 자신의 의무는 끝나지 않았다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 의무는 우리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라 했다. 흙탕물이 있다면 돌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빠져주겠다는 자신의 보호법 또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이 모든 것은 몇 년을 먼저 태어난 자신의 숙명이라고 인정했다.
- 82p
파타는 언니에게 말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일러준 적은 없지만 나는 줄곧 언니를 따랐다고. 어릴 적에는 내가 너무 작았지만, 지금은 이 세상 누구보다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자신했다. 언니는 늘 나보다 앞서 있지만 뒤는 내가 지키고 있다고 했고, 한국에 와서 중학교에 함께 다닐 적엔 내가 언니를 보호했던 적이 더 많았다고 정정했다. 이제 성인이 되고서는 함께 있어주지 못하지만, 나의 의무는 끝나지 않았다고 이어 말했다. 그 의무는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선두가 샛길로 샌다면 나도 함께 따라갈 테니 이 미로를 함께 탈출하자고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몇 년을 늦게 태어난 자신의 숙명이라고 인정했다.
- 83p
고백
"지금도 슬퍼?"
"응."
"왜 슬픈데?"
"난 행복할 때 슬퍼."
"행복한데 왜 슬퍼?"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지나갈 시간이니까."
"또 행복할 텐데?"
"그치만 이 세상에 같은 행복은 존재하지 않잖아."
"그럼 슬플 때는?"
"슬플 때는 안심해."
"왜?"
"이보다 더 나쁠 일은 없을 테니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난 엎어져 있었고 오래도록 슬펐다.
- 147p
행운편지
비빌 언덕 있잖아.
만만하면서도 귀찮고 좋은 줄도 모르겠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언덕.
그게 믿는 구석이거든. 그리고 그건 꽤나 마음을 편하게 할 때가 있어.
그 언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무기인지 모르지? 그 비빌 언덕이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온 사람은 그 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거든.
너에게 기꺼이 내가 그 언덕이 되어줄게.
아참, 오늘 파란빛 아기새가 나에게 떨어졌어.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나의 행운 3분의 1을 너에게 나눠줄게. 넌 작고 소중하니까.
누구보다 난 너의 행복을 비니까.
넌 좋은 사람이야.
- 179p
행복해 하던 네가 부러웠다.
또 부끄러웠다. 또.
비가 지나간 먹먹한 한강공원을 거닐던 어느 밤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튕겨내며 반짝이는
물이 보였다. 나는 생각했지. '예쁘다...' 동시에
넌 소리 내어 말했다. "예쁘다! 어쩜 이리
예쁠까. 앞에 서봐 사진 찍어줄게."
자꾸만 반짝이는 것 앞에 날 세우는 너를 보고 섰다.
겨우 예쁜 걸 예쁘다고 생각해낸 내가 기특할
뻔했는데, 소리 내어 말하는 네가 또 부러웠다.
별결 다 질투하네.
부끄럽다 하자.
- 185p
원천
본질을 생각할 것
나는 작은 행성 속의 별가루 하나
- 199p
남의 집
이 지구가 내 고향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모든 선택은 쉬워졌다.
- 203p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을 넘는다. 그것도 자주. 특히 우리 집에서는.
- 298p
아이들은 아빠를 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물 없이 못 사는 딸들이라는 것을 아빠도 안다.
- 3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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