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단 신청해서 읽게 된 책이지만,
서평단이 안 됐어도 읽었을 책이다.
미술이나 건축에 대해 보는 눈은 없지만
요새 관심이 가는 분야라서 이 책도 눈길이 갔다.
미술 건축이나 건축 역사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내용과는 완전 다르다.
읽으면서 머리를 탕!치는 충격을 받았다.
여행 가면서 해외에서 즐기는 여행을,
이 도시에서 살면 매일 행복하겠다는 바람이,
왜 한국에서는 안 된다고만 생각했을까.
왜 못하는 건지에 대해서는 당연시 했을까.
내 삶에서 편하면서 포기하게 되는 부분도,
후에는 그것이 점점 커져서 그리워지는 추억 같은,
옛 도시의 골목길 같은 도시를 한국에서도 다시 마주하고 싶다.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고무줄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건식화장실을 보면서 여긴 어떻게 청소하지?
물청소도 못하고, 더럽게 어떻게 청소할까?
내가 다 걱정이 될 때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일본은 목욕에 진심이어서 욕실에 변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웃나라여도 다르구나 싶다.
또한 욕실을 꾸며서 목욕하기 좋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목욕을 좋아하는, 목욕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정말 그 옆에 변기가 떡하니 있다면 별루긴 하겠다.
앞으로 집들을 보면 그냥 지나쳐지지 않을 것 같다.
건물, 창, 문, 정원 등등 거리 풍경만 보던 것이,
세세하게 볼거리가 많아지겠다.
여행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겠지?
여행의 재미 요소를 하나 더 찾게 되었다.
이게 아는 것의 힘인건가?
평소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많은 걸 느꼈다.
먼저, 길가가 주차장.
어딜가나 그렇겠지 싶었는데
식당이나 카페에서 창 밖이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아닌,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면 좋겠다 싶다.
예전 나의 로망이, 카페에서 창 밖 사람 구경이었는데
이제는 쉽지가 않다.
여행을 가면 그래서 그렇게도 사람 구경을 하나보다.
또한, 주변에 크든 작든 공원이 많다는 것,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너무 부럽다.
큰 도서관은 날 잡아서 가야하지만,
동네 작은 도서관은 마치 동네 가게나 다이소, 올리브영 가듯이 갈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서 도서관에서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면서
책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 행복한 기분이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곳이 없다.
너무 없다.
건강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더니,
알고보니 돈 때문에
사람 생각 안하고 설계해놓고
평생을 불편하게 이용해야 하다니.
알게 되니 갑갑한 심정이다.
부설주차장법으로 집값 오르고,
주차공간 있으니, 차를 사고, 차 타고 다니고,
차 막히고, 또 주차공간 확보하고..
이러다가 이 좋은 땅 덩어리에
사람 공간보다 차를 모셔둘 공간이 더 커질 듯하다.
우리의 삶터를 둘러싼 소소한 환경을 당연하다 여기지 말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질문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좋은 삶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그 질문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 한은화 중앙일보 기자
건축은 철저히 그곳에 사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속한 문화권의 가치관에 맞추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집도 바로 이 문화 속에 살고 있는 나의 가치관에 맞게 만들어진 건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5p
불에는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집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조리하는 기능이다. (...)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좀 더 편리하게 쓰려고 불 피우는 위치나 방법을 달리하면서 불은 나눠지게 되었다. 근데 유독 우리나라만 그 분리가 상당히 나중에야 이루어졌다. 온돌이라는 난방 취사 통합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온돌) (...) 온돌이 아닌 방식으로 불을 쓰는 나라는 그래서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먼저 부엌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었다.
- 31~32p
그러나 우리나라는 온돌로 불만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뿐,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일하는 방식은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 (...) 우리나라는 그놈의 효율적인 온돌 시스템 때문에 해방 이후 196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에조차 쭈그리고 앉아서 연탄불을 넣는 구조를 고수하고 있었다.
- 33~34p
서양은 만찬이라는 문화가 있어 식사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물론 요리하고 차리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따로인 중산층 이상을 중심으로 한 문화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임금님도 식당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잠자던 방에서 상을 받았으니 문화의 차이와 그로 인한 공간의 차이가 적지 않은 것이다.
- 35~36p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에게 집 밖의 바닥이란 집 안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더러운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반면, 영국 사람에게 집 밖의 바닥과 집 안의 바닥은 별반 차이가 없음이 분명하다. (...) 한국 사람들은 집 밖에서는 '절대'라고 할 만큼 대부분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는다. 무릎에 올려놓거나, 선반에 올려놓거나, 사무실에서도 의자에 올려놓는다. 반면 영구 사람들은 지하철이고 술집이고 거리고 상관없이 신발 신고 돌아다니는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 정말이지 저 정도면 집 밖 바닥의 청결도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 싶을 정도다. 그러니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도 집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45p
집에 손님을 초대하게 되면 다른 데는 대충 치우더라도 반드시 화장실만큼은 제일 꼼꼼히, 가장 정성 들여 치우고 꾸미라는 조언이 있었다. 화장실은 작고 기능적인 공간이지만, 손님이 혼자 조용히 앉아 있게 되는 공간이기에 아주 작은 것까지도 유심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 화장실은 센스를 뽐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느 화장실에는 없는 소품인 작은 그림이나 인형이 놓여 있다든가, 아이 주먹만큼 작은 유리컵에 들꽃 한 송이가 꽃혀 있기만 해도 엄청나게 신선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 48~49p
결국 여행의 기억이란 너무 대단해서 남이 찍은 사진으로 이미 보았던 모습보다는 그렇게 예기치 않은 낯선 순간들이 더 강렬하게 남는 법이다.
- 100p
길에서의 경험이 그 동네에 사는 느낌을 만드는 것이고, 그 느낌은 그 집에서 살던 기억과 하나로 이어지는 걸 생각하면 동네의 길은 집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 103p
런던에 살 때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던 장면이 있다. 버스가 양방향으로 오가는 길을 보수 공사하면서 보행자를 위한 널찍한 임시 보도를 만드느라 차로 하나를 펜스로 막은 모습이었다. 보도를 만들고 보니 차는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 되어서 수신호로 양방향의 차를 통제하고 교대로 지나가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정말이지 문화적 충격을 제대로 받았다. 차가 다니는 길을 막아서 불편하게 하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이 아닌가.
- 105~106p
아니, 지금이 조선 시대로 아니고 차가 임금님도 아닌데, 차는 그냥 나랑 평등한 다른 사람이 타고 있는 교통수단일 뿐인데, 다시 걸어간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옆으로 물러서서 비켜 줘야 한다니. 이건 정말이지 너무 굴욕적이지 않은가. 그뿐이 아니다. 자동차는 사람에 비해 엄청나게 크고, 겁나게 무겁고, 무섭게 단단하다. 그 거대한 기계 덩어리에 속도까지 붙으면 그야말로 흉기가 따로 없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차는 멀쩡하고 내 몸만 상한다. 그런 자동차와 스칠 듯 말 듯 걷는 길은 보행자에겐 위험천말일 수밖에 없다. 길을 걷는 일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인가?
- 108p
보도 없이 차와 공존해서 걸어가는 것이 익숙해져서일까.
아파트 단지를 다니다보면 보도가 있는데도 굳이 차로를 걷는다.
나 또한 종종 그랬던 것 같다.
차와의 공존이 너무 익숙해서??
근데 주차장을 더 많이 만들면, 정말로 주차가 더 편해질까?
- 122p
물론 절대적인 숫자로만 비교했을 때는 주차장의 수가 자동차보다 조금 더, 1.3배 정도 많기는 하다. 그러나 주차장은 그 정도 많아가지고는 턱도 없다. 차는 여기서 저기까지 가기 위한 수단이다. 그 말인즉슨, 원래 있던 곳과 앞으로 가야 할 곳에 모두 차를 놓아둘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123p
자동차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한정된 공간인 도시는 점점 더 자동차로 가득 차게 된다. 가득 차고도 넘쳐 주차장 뿐만 아니라 사람이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어야 할 길까지도 자동차가 떡하니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막을 방법은 사실 법적 장치 정도의 강력한 조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조치는 우리나라 주차장처럼 후불제가 아니라 영국의 주차장처럼 선불제여야 한다. 즉,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믿고 차를 사게 해 줄 것이 아니라 먼저 빈 주차장이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만 차를 살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뜻이다.
- 125p
주차장 부족에 대한 해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기 소유의 빈 주차장이 있다는 증명을 해야만 차를 살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인 차고지 증명제가 그것이다. (...) 2007년부터 제주도만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하게 되었을 뿐, 제주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아직도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 자동차 구입을 제한하는 법이 자동차 산업의 나라인 우리나라 국회를 통과하기는 코끼리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
그렇게 우리나라의 길은 서서히 주차장이 되어 갔다.
- 126~127p
대체 이 길은 누구의 것일까. 대체 누구의 것이길래 다 같이 지나다니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 길이라는 공간에,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개인의 물건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 허락한 걸까. 정작 길을 본연의 기능대로 사용하려는 사람이나 차는 불편하고 위험하게 말이다.
- 127~128p
차를 가질 권리를 먼저 존중할 게 아니라, 안전하게 길을 걸을 권리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
- 132p
물건을 사는 일의 의미가 그 물건을 사는 데 필요한 돈뿐만 아니라 그 물건을 둘 공간에 대한 비용까지 지불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 중 하나일지라도 모른다. 그리고 설혹 지불할 능력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돈을 쓰는 일이 과연 그만큼 가치가 있고도 꼭 필요한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너무 많은 물건, 너무 많은 음식은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지치게 만드는 측면이 분명 있으니까 말이다.
- 145p
길바닥에, 표지판에 아무리 크게 '어린이 보호'라는 글자를 쓴다 해도, 영국 사람들이 매일매일 하고 있는 노력에 비하면 글자는 너무 공허한 외침이 아닌가. 물론 잠시도 아이를 혼자 두지 못한다는 건 때로 아주 버거운 일이었다. 애를 제시간에 데리러 갈 수 없을 땐 갈 수 있는 순간까지 동동거려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애를 맡기다 보면, 아이가 숨 쉬는 짐짝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힘들어도 분명 그게 더 옳았다. 그래야 아이들은 안전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아이는 편하려고 키우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 169p
큰 도서관 하나를 짓는 것보다 작은 도서관을 여러 개 짓는 것이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 집에서 도서관까지도 몇 걸음 안 되는데, 건물 안에 들어가서 책이 있는 곳까지도 몇 걸음만 가면 된다. 그래서 내겐 작은 도서관이 훨씬 더 아름답다.
- 179p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작은 공간도 푸근히 내어 주지 않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 183p
열악한 환경은 사람 맘을 참 소박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난 이런 데서까지 소박해지고 싶지 않다. 대체 왜 우리나라에선 걷는 게 죄라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은 거냔 말이다. '억울하면 출세해!'가 아니라 '억울하면 차 타!'라고 도시가 말하는 있는 것만 같다. 아니다. 말로는 걸어 다니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동차만 편리한 방향으로 도시를 만들고 있다.
- 234~235p
도시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자동차 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들 속에 있다.
- 236p
넓은 길이 좋다고 계속 길을 넓혀가는 서울과, 넒은 길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런던. 좁은 골목길엔 보도부터 없애는 서울과, 차도를 없애더라도 보도는 남기는 런던.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서 보행자는 3초도 기다릴 필요 없게 만드는 런던과, 보행자가 자동차보다는 6배는 더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서울. 같은 시대를 사는 두 도시가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을 것이다.
(...)
자동차를 위해 닦아 놓은 길 때문에 사람이 그 너머로 가는 일이 불편해진다면, 그 길은 잘못된 길이다. 자동차를 위한 길을 사람이 건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길을 자동차가 잠깐 양해를 구하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 그렇게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길을 만드는 도시라면 얼마나 좋을까. (...) 차를 위한 길만 길이라고 생각하는 한, 이 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가 될 수 없다.
- 238~239p
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름 서울의 넓은 도로,
어느 대도시보다 넓고 쾌적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관점이 달라졌다.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에게는 쾌적함이 없는 것이다.
차가 많다면, 차를 이용하기 편하게 해야한다는 생각.
당연하다 싶었다.
하지만 차가 많다면, 차의 이용을 줄이는 방안,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편하게,
오히려 차 이동이 불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런던의 생활, 도시의 모습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사람 중심의 마인드가 너무 부러웠다.
자동차 산업국인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일까?
기차역을 설계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기차가 사람에게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기차에게 가는 것이란다. 기차가 사람에게 가면 사람은 덜 걸어도 되므로 환승 거리는 짧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역은 사람이 기차에게 가는 방식으로 설계된다고 한다. 왜? 그게 더 비용이 적게 드니까. 아니, 이런 식으로 돈을 아끼는 게 대체 누구에게 좋단 말인가.
- 253p
얼마나 높은 자리에 계시든 간에 교통에 관한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만큼은 임기동안 매일 자가용을 버리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관례가 생기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레벨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 258p
제대로 정리해서 어디에 있는지 아는 물건이 아니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260p
그렇게 런던에는 우리나라처럼 술집과 모텔만 모여 있는 유흥가는 많지도 않고 있다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술집과 모텔이 해롭다고 생각해서 모아 놓았는데, 어쩌면 한데 모아 놓았기 때문에 그런 퇴폐적인 분위기가 된 건 아닐까?
- 272p
조금만 걸어도 다른 느낌의 거리가 나타나서 계속 길을 걸어가고 싶은, 다양한 맛이 섞여 있는 비빔밥 같은 도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281p
그러나 건물마다 주차장을 얼마나 만들게 할 것인지는 개별 건물의 규모를 보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보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도시 전체의 규모에 따라 주차장 규모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도시 안에 자동차를 얼마나 돌아다니게 할 것인가, 즉 도시 운영의 관점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법은 그저 도시에 들어온 차에게 주차할 공간을 최대한 마련해 주는 데에만 그 목적이 있다고 불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 도시에 그 목적이 적절한가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 287p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떤 법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서 보행자와 자동차의 동선을 분리해서 설계하라고 하는데, 또 어떤 법은 모든 건물에 주차장을 만들게 함으로써 건물마다 보행자와 자동차의 동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어 거리를 걸어가는 일 자체를 위험천만한 일이 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 294p
나는 런던의 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다.
공원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서울에선 이만큼의 사람들이 대체 다 어디로 갈까?
- 305p
알다시피 사람의 발걸음은 몹시 예민하고 동시에 게으르다. 많은 사람을 발길은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길로 향한다. 그래서 레벨이 조금만 달라도, 단 몇 발짝은 더 걸어야 해도, 조금만 분위기가 삭막해도 발길이 덜 가게 된다. (...) 그러니 저 멀리 있는 산을 공원이라 이름 붙이고 도시 녹지 면적으로 퉁치지 말고, 시민들의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가까운 평지 공원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 309~310p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면 공원이나 광장을 자주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현지인처럼 느긋하게 여유부리며 즐기는 것이
여행의 로망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일단 나는.)
왜일까? 왜 우리나라는 그 여유가 로망이 아닐까?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분명 내가 낸 세금도 이런 박물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쓰였을 것이다. 근데 세금을 이럭 식으로 쓴다고 생각하면 내는 게 훨씬 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깝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뭐랄까? 이런 식으로 쓰는 이 나라가 꽤 멋있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것이야말로 폼 나는 복지서비스가 아닌가. 복지가 단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주고, 아플 때 병원비를 같이 내주고, 나이 든 사람에게 연금을 주는 수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풍성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데까지 이른다면 말이다.
- 313p
길을 걷는 사람이 거의 없는 도시가 유령 도시가 아니고 뭔가. 거리에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하고 안전한 도시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거리를 걷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외국 관광지는 그렇게 길 따라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근데 외국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렇다면 더 좋지 않을까? 백화점은 건물 안에서만 사람을 맴돌게 하지만, 거리를 걸으며 쇼핑하는 사람은 더 멀리, 더 넓게 움직이며 길로 이어진 도시를 점점 더 넓은 범위에서 살아 있게 만든다. 결국은 그런 도시를 고급스러운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331p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위하는 방법은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를 더 만들어주는 것이다. 계단 옆의 경사로라든가, 세면 대 옆의 손잡이라든가, 다른 데보다 폭이 넣은 게이트 그리고 휠체어를 탄 파란색 장애인 로고가 커다랗게 붙은 화장실 같은 것들. 그걸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은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더 만들기도 하지만, 할수만 있다면 장애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구분 없이 똑같은 시설을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려고 노력한다. (...) 장애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서 다른 길로 가게 만드는 건, 분명 배려로 시작했음에도 어느 지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차별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334~335p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승강기로만 올라가야 한다면, 그래서 그런 건축적 경험을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이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공간의 구분이 서글픈 차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길로 갈 수 있게 만드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그래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 337p
성별의 구분 역시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
- 343p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모든 공간에 성별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는 편이다. (...) 장애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성적 구분이 모호한 사람도 함께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회, 아니 그 어떤 신체적 차이로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사회가 아닐까. 아무리 그런 사람의 수가 적다 해도, 화장실을 갈 권리를 존중받지 않아도 될 만큼 하찮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 345~346p
멀리서 보기에 휘황찬란해 보이는 이 고층 아파트들로 가득 찬 서울이라는 도시의 50년 후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런 면에서 고층 건물을 이토록 많이 짓는 것이 이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넓어야만 좋은 길이라는 쌍팔년도식 생각은 이제 제발 그만하자. 실제로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길은 운치 있는 좁은 길이 아니었던가.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녹슨 자물쇠가 삐뚜름히 걸린 낡은 문이 있고, 고추가 자라는 화분처럼 삶의 자취가 있고, 넋놓고 걸음을 옮겨도 차에 치일까 걱정할 필요 없게끔 차가 아예 들어올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길. 그런 정취 있는 도시 골목길이 그 법 때문에 점차 사라지고 있다.
- 365p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은 그저 단순한 길이 아니다. 그 길 자체가 애지중지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 366p
런던에 있어 보니 어디까지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옛것이고, 또 어디서부터는 낡아서 버려야 할 것인지의 경계라는 게 사회마다 무척 다르고 또 자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 경계가 너무 한참 멀리 있어서, 그보다 덜 오래된 것들을 너무 쉽게 버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 369p
낡은 것들은 새것의 짱짱함이나 반짝임과 비교하면 분명 너저분하고 허술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는 새겻에는 없는 자연스런 시간의 흔적이 있다. 게다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당연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만들기 어려운, 그 시대만의 무엇이 있기도 하다. 그런 것들을 멋스럽다 여기기 시작히면 오히려 새것보다 더 가치 있고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새 것은 곧 낡게 되지만, 낡음은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 370~371p
무섭게 늘어나는 인구를 위해 다급히 도시를 키워야 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그렇게 성급하게 만들어 놓은 드시에 또 반대로 무서운 속도로 줄어드는 인구가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잘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 372p
제발 런던에만 있는 그 무엇 말고, 런던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는 것들을 더 유심히 보라고. 도시를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우리가 도시에서 정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걸으면서 느껴보라고.
- 377p
이 글은 블랙피쉬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관련 포스팅 더보기
'국내도서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리뷰]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은유 (72) | 2024.07.16 |
---|---|
[책리뷰] 쓰기의 말들 - 은유 (69) | 2024.07.04 |
[책리뷰] 내 방 여행하는 법 - 그자비에 드 메스트로 (51) | 2024.06.07 |
[책 리뷰]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이다혜 (86) | 2024.05.28 |
이어령과의 대화 - 김종원 (171) | 2024.02.28 |